하녀, 2010

(물론 동시에 그 계급을 구분짓는 중심 가치는 "돈"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권력의 최 꼭지점에 있는 훈(이정재 분)은 모든 면에서 완벽함을 보여준다.
타고난 재력과 권력을 갖춘 집안에 훤칠한 외모, 조각같은 몸매, 우아한 취미, 그리고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심까지..
그야말로 실패가 없는(아니 없어야만 하는) 상류층을 대변하는 완벽한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이 사회의 철저한 착취계급으로 살아왔던 "하녀" 은이(전도연)가 쉽게 빠져드는 것은
너무나 공감이 가는 장면이다.
우리네가 브랜드 옷을 두르고 브랜드 커피를 마시며 모든 유행과 브랜드를 쫒는 행위들이 사실상 한단계라도 더 상류층에 편입되기를 갈망하는
자본주의적인 욕망때문이 아니던가..
(또한 도시 속 매스미디어들은 그런 상류지향적 소비를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다.)
잠시나마 상류층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우받기를 원했던 하층민에 대한 기득권층의 공격수준은 일반인의 상식을 간단히 넘어선다.
그냥 조용히 애만 낳고 살겠다는 그녀를 그렇게 까지 잔혹하게 구는 이유는 어떤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신들에게 짐이 될만한 씨앗은 철저히 짓밟아
뭉개버려야만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는 기득권의 본성이 아닐까..
(이건 지난 5년동안 끊임없이 "듣보잡 참여정부"를 물어뜯던 기득권층과 보수언론들의 행태에 그대로 투영된다.
심지어 그들은 조용히 고향에 돌아가 말년을 보내려던 그를 끝까지 가만두지 않고 짓밟아 댔다.)
훈과 은이의 대립적 관계 속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자는 누가 뭐라해도 병식(윤여정)이 아닐까 싶다.
뼛 속까지 하녀근성이라는 그녀는 그 말에 걸맞게 철저히 훈의 집안에 복종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과 똑같은 처지인 은이의 불행에 공감하고 분노하며 결국 그들과 결별을 선언하고야 마는 계급연대의식이 분명한 캐릭터이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때론 얄미우면서 또 때론 공감이 가는 이유는 이 병식의 캐릭터야말로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대중의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누구나 회사 상사의 뒷담화를 하고 회사로 부터 불이익을 받는 동료를 걱정해주지만 결국 상사의 지시에 복종해야 하며 때론 그 동료를 팔아넘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대다수 직장인들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일 것이다.)
원작 하녀의 결말과 리메이크 작 하녀의 결말은 사뭇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원작 하녀에서 상처받은 계급은 철저히 대항하여 자신과 동시에 자신을 짓밟았던 권력층의 파멸을 이끌어냈다.
반면 리메이크 작의 하녀는 그저 "찍"소리만 내었을 뿐 그들의 지배구조를 바꾸는데는 실패한 듯 보인다.
과거와 달리 너무나 고착화되버려 더이상 부끄러움을 모를 정도로 타락해버린 천민자본계급사회에서 군부독재에 맞섬과 같은
투쟁의 역사는 다시 볼 수 없는 것을 의미할까?
우리는 지금껏 단 한 번 민중 승리의 역사는 없었지만 수많은 분들의 "찍"소리에 의해 조금씩이나마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이끌어 내어 왔다.
사회도 다변화 사회로 접어든 지금 더이상 그런 아래로부터의 개혁만 기대하기도 어려운 시점에 와있다.
그래서 깨어있는 시민정신은 물론 사회지도층들의 자기혁신이 더 절실할지도 모른다.
하녀(은이)의 불행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을 훈의 딸이라면 사회적 책임감과 건강한 마음을 가진 진정한 사회지도층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그 반대가 되거나..
덧: 개인적으로는 은이의 과거가 유아교육과 출신이라는 점 또한 착취계급의 표본임을 나타내주는 가장 확실한 설정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과거 상류계층 아이들의 보육과 예절교육을 유모들이 담당하였지만 근본적 가치관과 예절의 대상 및 기준은 상류지향적일 수 밖에 없었으며
그에 따라 유모들은 철저히 주류에서 배제되어 왔다.
그리고 수세기가 지나 만인이 평등하다고 외치는 이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보육교사들의 처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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