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list about '영화이야기'   124

  1. 2010/05/31 하녀, 2010
  2. 2010/01/20 아바타 (AVATA,2009) (3)
  3. 2009/10/31 어글리 멜라니..
  4. 2009/10/21 디스트릭트 9(District 9, 2009)
  5. 2009/08/05 해운대 , 2009 (2)
  6. 2009/07/31 [렛츠리뷰] 김시광의 공포영화관
  7. 2009/07/27 블러디 발렌타인 3D ,2009
  8. 2009/06/17 물 좀 주소, 2009 (1)
  9. 2009/06/16 드래미 미 투 헬(Drag me to Hell,2009) (3)
  10. 2009/06/02 마더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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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의 영화 하녀는 철저히 계급화된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물론 동시에 그 계급을 구분짓는 중심 가치는 "돈"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권력의 최 꼭지점에 있는 훈(이정재 분)은 모든 면에서 완벽함을 보여준다.
 타고난 재력과 권력을 갖춘 집안에 훤칠한 외모, 조각같은 몸매, 우아한 취미, 그리고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심까지..
 그야말로 실패가 없는(아니 없어야만 하는) 상류층을 대변하는 완벽한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이 사회의 철저한 착취계급으로 살아왔던 "하녀" 은이(전도연)가 쉽게 빠져드는 것은
너무나 공감이 가는 장면이다.
 우리네가 브랜드 옷을 두르고 브랜드 커피를 마시며 모든 유행과 브랜드를 쫒는 행위들이 사실상 한단계라도 더 상류층에 편입되기를 갈망하는
자본주의적인 욕망때문이 아니던가..
(또한 도시 속 매스미디어들은 그런 상류지향적 소비를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다.)
 
 잠시나마 상류층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우받기를 원했던 하층민에 대한 기득권층의 공격수준은 일반인의 상식을 간단히 넘어선다.
그냥 조용히 애만 낳고 살겠다는 그녀를 그렇게 까지 잔혹하게 구는 이유는 어떤 작은 것 하나라도 자신들에게 짐이 될만한 씨앗은 철저히 짓밟아
뭉개버려야만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는 기득권의 본성이 아닐까..
 (이건 지난 5년동안 끊임없이 "듣보잡 참여정부"를 물어뜯던 기득권층과 보수언론들의 행태에 그대로 투영된다.
심지어 그들은 조용히 고향에 돌아가 말년을 보내려던 그를 끝까지 가만두지 않고 짓밟아 댔다.)
 
  훈과 은이의 대립적 관계 속에서 단연 눈에 띄는 자는 누가 뭐라해도 병식(윤여정)이 아닐까 싶다.
 뼛 속까지 하녀근성이라는 그녀는 그 말에 걸맞게 철저히 훈의 집안에 복종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과 똑같은 처지인 은이의 불행에 공감하고 분노하며 결국 그들과 결별을 선언하고야 마는 계급연대의식이 분명한 캐릭터이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때론 얄미우면서 또 때론 공감이 가는 이유는 이 병식의 캐릭터야말로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대중의 모습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누구나 회사 상사의 뒷담화를 하고 회사로 부터 불이익을 받는 동료를 걱정해주지만 결국 상사의 지시에 복종해야 하며 때론 그 동료를 팔아넘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대다수 직장인들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일 것이다.)

 원작 하녀의 결말과 리메이크 작 하녀의 결말은 사뭇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원작 하녀에서 상처받은 계급은 철저히 대항하여 자신과 동시에 자신을 짓밟았던 권력층의 파멸을 이끌어냈다.
 반면 리메이크 작의 하녀는 그저 "찍"소리만 내었을 뿐 그들의 지배구조를 바꾸는데는 실패한 듯 보인다.
 과거와 달리 너무나 고착화되버려 더이상 부끄러움을 모를 정도로 타락해버린 천민자본계급사회에서 군부독재에 맞섬과 같은
투쟁의 역사는 다시 볼 수 없는 것을 의미할까?
 
 우리는 지금껏 단 한 번 민중 승리의 역사는 없었지만 수많은 분들의 "찍"소리에 의해 조금씩이나마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이끌어 내어 왔다.
사회도 다변화 사회로 접어든 지금 더이상 그런 아래로부터의 개혁만 기대하기도 어려운 시점에 와있다.
 
 그래서 깨어있는 시민정신은 물론 사회지도층들의 자기혁신이 더 절실할지도 모른다.
 하녀(은이)의 불행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을 훈의 딸이라면 사회적 책임감과 건강한 마음을 가진 진정한 사회지도층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그 반대가 되거나..
 
덧: 개인적으로는 은이의 과거가 유아교육과 출신이라는 점 또한 착취계급의 표본임을 나타내주는 가장 확실한 설정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과거 상류계층 아이들의 보육과 예절교육을 유모들이 담당하였지만 근본적 가치관과 예절의 대상 및 기준은 상류지향적일 수 밖에 없었으며
그에 따라 유모들은 철저히 주류에서 배제되어 왔다.
 그리고 수세기가 지나 만인이 평등하다고 외치는 이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보육교사들의 처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2010/05/31 19:24 2010/05/31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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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아이맥스3D좌석을 구하려면 몇 주전부터 예매를 해야 겨우 볼 수 있는 아바타..
영화의 신기원을 세웠다는 수식어만큼이나 인기가 높다.

아이맥스까지는 좌석도 좌석이지만 돈이 너무 비싸져서 일반 디지털3D로 감상하였는데
아이맥스가 아니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토록 열광할만한 그래픽인가하는 의구심은 조금 든다.
확실히 대단히 좋긴하지만..요즘은 워낙 좋은 영상을 많이보다보니 눈이 워낙 높아졌기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은 스타워즈 에피소드3 오프닝 장면이 더 감격적 ;ㅁ;b)

아무튼 아바타를 보고 나온 대부분의 사람이 황홀한 영상미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을 때..

빨갱이 기질이 다분한 본인에게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단어들은

"용산"과 "연대"였다.

앞으로 개봉예정 중인 영화 "평행이론"이었던가..
일정한 시차를 두고 다른 시대에 같은 운명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이론을 토대로 만든 영화인데

2009년 영화시장을 보면 그 이론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개발중심근대화 폐단의 결정판인 용산참사는 대한민국의 절대수도 서울 한 복판에서 벌어진 일인데..
헐리웃에서 이미 수년 전부터 제작되어 올해 개봉한 두 편의 SF영화에서는 우연치고는 너무나 흡사할 정도로
"재개발"과 "공권력의 폭거"에 대한 코드가 그대로 담겨져 있다.
(한 편은 아바타 다른 한 편은 디스트릭트 9)

디스트릭트 9에서 외계인들은 결국 강제철거와 이주를 당하고도 살림살이는 그닥 좀 나아지지 않으셨다.
하지만 아바타의 나비족은 지구인을 몰아내고 그들의 터전을 성공적으로 지켜내었다.

같은 주제를 가진 영화의 결말이 서로 다른 것은 단 하나
디스트릭트9의 외계인들은 힘을 합치지 못 했고
아바타의 판도라부족들은 각각의 부족은 물론 행성 내의 맹수들까지 함께 연대하였다는 사실이다.

만일 판도라의 다른 나비족들이 그건 너희들의 문제이지 내 문제는 아니야 라며 서로 연대를 하지 않았다면..
지구인들이 현재의 나비족만 몰아내고 그대로 다른 부족은 건드리지 않은 채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잠시의 평화는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 현재 나비족의 고통은 곧바로 인근 다른 나비족에게 그대로
전가됨이 당연해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유는 지구인들의 목적은 판도라 행성의 개발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 아닌 이미 에너지 자원이 바닥나버린 지구에
고가로 팔 수 있는 자원채굴 그 자체만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부족거주지 밑의 자원이 바닥나게 되면 자연히 다른 부족을 찾아 이주를 요청하고 협상이
안되면 첨단화력을 동원한 강제퇴거작전을 시행할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재개발도 마찬가지이다.
재개발이 진정 지역원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도시미관확충만이 목적이 아니라 개발에 따른 막대한 이득이
오로지 거대재벌건설사들과 이권이 개입된 졸부들의 통장만 촉촉하게 위함임은 조금만 관심을 가져보면
다 알 수 있다.

연말연시 화려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면서 한 순간 시름을 잊고 즐겁게 놀아보고 싶은데 거기에 거창하게
무거운 사회의식을 심어주고 "변화"와 "행동"을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같은 영화를 본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재개발 정책과 연대에 대한 합리적 생각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덧) 포스터의 "타이타닉 감독 작품"이라는 광고 문구는 정말 짜증날 정도로 싫다.
 한국관객층들에게 있어 제임스카메론의 인지도가 정말 없는 것인가 아니면
 홍보사에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자체 판단한 것인가..
 터미네이터와 에일리언,트루라이즈,타이타닉.. 이 영화를 기억못하는 사람이 정말 그렇게 많은가?
 
2010/01/20 14:17 2010/01/2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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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razerh 2010/01/20 15:26  mod/del  write

    저도 이번주 드디어 보러갑니다.^^ 영화 한 편 보기 참 힘드네요. 그렇게 보고 싶은 영화도 아닌데 예매하는 데 오기가 생기는 바람에 ㅎㅎ.. '타이타닉 감독 작품'은 정말 짜증이죠. 터미네이터 1,2는 물론 에일리언2, 어비스 등 명작도 많은데 말이죠. 개인적으로 카메론 영화 중 가장 재미없는 걸로 타이타닉을 꼽습니다.

  2. 오빠다. 2010/03/27 02:16  mod/del  write

    빨갱이 기질이 다분한 본인에게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단어들은...
    빨갱이 인정!!!
    일단은 비쥬얼 만으로도 괜찮았어...
    내용이니 이런거 다 떠나서 비쥬얼 만으로도...

아주 오래 전에는 TV에서 하는 영화를 꼭 챙겨보곤 했었다.

주말마다 MBC 주말의 명화를 볼까 아니면 KBS 명화극장을 볼까를 고민할 정도였지만
인터넷의 발전 이후 주말의 명화는 심야시간대로 후퇴하면서 자연스레 관심에서 벗어나지게 되었다.

오늘 KBS에서 방영하고 있는 어글리 멜라니란 영화를 등 너머로 흘끔흘끔 감상하던 중..

정말 인상깊은 장면이 나왔다.

여주인공 멜라니가 일하던 가게에서는 평소 멜라니의 외모때문에 많은 차별을 해왔던 것 같다.
급기야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해고까지 하려고 하는데..
결국 화가 난 멜라니는 마침 가게를 찾아온 노동부 관계자에게 그간의 불합리한 대우에 대해 낱낱히
고하게 되고 노동부 관계자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가게주인을 노려보며 동시에 강력한 구두 경고로
시정할 것을 고용주에게 "명령"한다.

이 영화의 장면은 우리네 현실과 상당히 비슷한 점을 보이면서 동시에 완전 별천지 세상처럼 보이게도 한다.

가게 주인이 멜라니에게 이야기하던..
"노동자의 권리보다 위에 있는 것은 고용주의 권리"라는 황당무계한 논리는..
사실 그다지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나 흔하디 흔한 생각이라 익숙하기 까지 하다.
심지어는 우리 노동자들 스스로도 이런 주장에 무감각하여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한마디로 억울하다고 고칠 생각 말고 다른 좋은 데를 찾아가는 게 당연하다는 이 땅의 많은 머리들은
생각하고 있다.(불과 몇 년전 처우개선과 해고 철회를 주장했던 홈에버 사건 때만해도 여론은
시위대에게 일방적인 비난을 퍼부어댔었다.)

그러나..프랑스 영화 어글리 멜라니에서 폭로 이후 보여진 양상..
고용주에게 전해지는 짧지만 강력한 노동부 관계자의 경고...
"앞으로 계속 유의주시할 것이며 이것은 마지막 경고입니다. 가게폐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구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프랑스 사회의 노동권리에 대한 보편적 시각이라고 하면 너무 일반화를 시켜버린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우리 정부가 보여왔던 현실은
"뒷짐" 또는 잘해봐야 "시정권고"정도 였다.
시정권고는 권고일 뿐이였고 기업이 지키지 않아도 더이상 일선 현장에서 계도할 수단이나 강제사항조차도
없었다.

더우기..영화에서 가게 주인은 그저 경고로만 끝나고 넘어간 사안이 너무 감사하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살살(?) 폭로해주었던 멜라니에게 고맙다며 앞으로 잘하겠다는 약조까지 한다.

우리는..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에겐 경찰력과 용역깡패를 투입하였고
내부고발자에겐 철저한 응징을 가해오고 있다.

노동자가 침해당한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시정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는 사회..
고용자는 노동법을 위반하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을 져야하는 일인지를 스스로가 느끼고 있는 사회..
(동시에 큰 책임을 지울 수 있는 법률이 마련되어 있는 사회..)

이런 사회가 우리 나라가 되면 정년 안되는 것일까..
그렇게 되묻고 싶어지게 만드는 영화 장면이었다.

2009/10/31 02:32 2009/10/31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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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영화를 보기 전 사전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보는 편이기 때문에 한 순간 낚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국내 홍보를 위해서 피터잭슨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건 좋지만 그래도 실제 감독은 닐브롬캠프라는 사실은 어느정도 포스터에 명시해줬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안그래도 영화는 너무나 분명하게 "인종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이것도 감독인지도에 따른 일종의 차별(?)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영화의 배경은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을 격리수감하고 있는 디스트릭트9이 배경이다.
외계인이 지구에 내려온지 수십년 동안 각종 범죄와 민원이 끊이지않자 결국 국제기구 MNU는 그들의 강제이주를
계획하는데..

국제기구가 내세우는 명분은 외계인때문에 불안정해져만 가는 질서..치안율이다.
그들이 얌전히 살지 않고 쓰레기를 뒤지고 범죄를 양산하기 때문에 -> 치안 불안정 -> 질서 유지 및 시민 안전을 위한 강제퇴출의 절차를 밟을 수 밖에 없다고..
(뭔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드래곤구 드래곤마운틴과 상당히 비슷해보이는데..?)

과연 그들이 지구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약탈을 일삼는 근본이 썩은 외계생명체라서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굶주림으로 지구에 불시착해버린 상황 속에서 최소한의 생계수단 조차 마련해주지 않고 쓰레기더미 가득한 허허벌판에 방치하고 격리시키려고만 한 것이 원인이었을까..

그들의 우주선이나 무기체계 등만 봐도 지구에 비해 동등 이상의 문명이 발달된 곳임을 알 수 있듯이..
문명인을 문명인답게 대해주지 않을 시에는 결국 문명이 배제된 폭력양상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나와 다르게 생겼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 집단(혹은 개인)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명적이지 못하다.
아울러 나보다 약자인 사람들 마저도 비정상 혹은 "발전"을 위해 희생될 수 밖에 없다고 규정하는 것 또한
문명적이지 못하다.

1996년 남아공 정부가 디스트릭트6라는 백인전용주거지로 공표하며 흑인들을 내쫓았다.
그리고 2009년 현재 그 배경을 토대로 SF영화 디스트릭트9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6이 9가되고 9역시 6이 되는 건 한 순간이다.

우리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서 천대받던 시절은 불과 수십년 전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서방백인과 동남아시아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비교해 보면 그때 당시 설움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하다.

덧: 주인공을 보고 있자니 데드얼라이브의 주인공 티모시 발므와 꽤 닮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서 혹시나 검색해봤더니 아니었다..데드얼라이브의 주인공 역시 무진장 허둥대고 고생하는 모습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2009/10/21 19:15 2009/10/2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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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윤제균 감독의 전작인 1번가의 기적은 코미디영화이지만 재개발에 따른 철거민들의 고통과 애환을 아주 직설적으로 보여주고도 있는 사회고발영화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모든 갈등과 불행이 오로지 개인의 노력에 의해 행복하게 바뀌어버리도록 한큐에 정리해버리는 엔딩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해운대 역시 한국형 재난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은 코미디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시종일관 관객을 웃겨준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공무원들의 안일주의와 책임회피..이권을 둘러싼 자본가와의 갈등을 양념형식으로 고발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해운대 역시 꽤나 불편한 엔딩으로 급마무리 되버린다는 점에 있다.

끊임없이 경고를 하며 대비할 것을 주문하는 해양학자 김휘(박중훈 분)의 말을 무시하다가 결국 거대한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게되는 스토리는 기존 헐리웃 재난영화와도 다를 바 없지만 지금 한국 사회의 불안한 현실을 또한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던..그러나 하지 않았던 거대한 쓰나미가 덮쳐온 후 결국 살아남는 자들은 아버지 재산에 빌붙거나 동네에 한 두명 있음직한 양아치, 고위관리자 및 고위 공무원(경고를 무시한 수장)들인 반면..
희생되는 자들은 구조요원들을 포함하여 타인에게 관대하고 배려심이 높으며 소위 착하게 살아온 인간들은 하나같이 다 목숨을 잃고만다.
(이유진-엄정화 분의 경우 작은 팁을 요구하는 수리공을 문전박대했을 때는 그 수리공에 의해 목숨을 건졌지만 정작 모든 과거 잘못을 후회하고 딸을 살려내고 난 후는 죽는다.
각종 경제이권에 개입하며 지역주민에게 원성이 자자했던 자본가 억조-송재호 분 역시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대형 건설사업 허가 취소신청을 내기 위해 해운대로 왔다가 결국 변을 당한다.
구조대원 최형식-이민기 분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존재를 위해 희생한다!)

1번가의 기적처럼 결국 수많은 고통 속에서 희생 치르는 존재들은 누구이며 그 댓가로 끝까지 목숨을 부지해가는 존재들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영화가 되 버린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든다.


2009/08/05 10:18 2009/08/0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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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rgento 2009/08/10 14:48  mod/del  write

    전혀 관심이 동하지 않았는데,,, 워낙 말 많은 영화가 되다보니 어쩐지 봐야할것 같은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걸 어째야 할까요? ^^

    • 레드몽키 2009/08/13 18:18  mod/del

      영화도 책과 같은 것 같습니다^^ 일단 보시고 판단하시는 게 좋으실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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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기쁘기 그지 없는 책이고 호러마니아에서부터 나처럼 자칭 호러광인 뜨내기 팬들까지도 두루두루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책 서문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공포영화란 장르는 국내에서는 아직까지는 다소 주류의 문화로 편승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포영화의 장르 성격상 연출에 있어서 관객들에게 "혐오감"이 뒤따르기 쉬운 탓(혹은 강요하기도 한다)이라 여긴다.
그래서 공포영화에 대한 편견을 가진 분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책의 발간은 더없이 기쁘다.

이 책은 공포영화를 본 사람에게는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재평가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다 본 것 같은 눈과 지식을 갖추게 만들어준다.
(딴지일보 사이트에 가보면 "읽은 척 메뉴얼"이라는 서평기사가 연재되고 있다.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책은 무서운 내용을 무섭지 않도록 쉬우면서도 전문적으로 풀어준다.
(작가가 오랜 기간동안 습득해온 공포장르영화에 관한 애정도와 해박한 지식 수준이 단순한 아마추어 블로거 수준이 아님을 이책을 통해서 확실히 증명된다고 볼 수 있다.)
 
공포영화가 무섭거나 징그러워서..혹은 다른 편견이 있어서 공포영화를 거부하시는 분들께서는
먼저 이 책을 읽어보시길 권장한다.

그리고 책에 소개된 영화 중 한 편을 보면..더이상 공포영화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덧: 책의 저자이신 김시광님은 지극히 본인의 개인적 사유로 인해 혼자서 각별하게 생각하는(?) 블로거입니다.
그 사유는 본인이 최초로 이글루스에 터를 잡고서 영화리뷰 블로그를 개설했을 때 가장 먼저 트랙백을 달아주신 분이셨기 때문이고...(지금은 제가 이글루스를 나와서 그 흔적은 없어졌지만)
그렇게 웹상에서 인연을 맺게 되어 수시로 블로그를 방문하면서 정보를 얻어오면서
그간 수박겉핥기 식으로 보아왔던 영화(특히 공포영화)에 관한 이해도가 굉장히 많이 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09/07/31 14:52 2009/07/3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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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디 발렌타인 3D는 1981년 제작된 동명의 영화를 최신기법으로 리메이크한 영화이다.

본인은 원작을 보지 못한 관계로 리메이크작이 얼마나 본작의 명성에 충실했는지 아닌지까지는 판단하기 어려우나 우선적으로 관객의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시키는 3D기법을 활용하는 데 호러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은 꽤나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영화는 3D기법을 십분 활용하여 굉장히 자극적인 장면을 영상에 내놓는데 사실 3D를 너무 강조하려는 나머지 쓸데없이 고어씬을 남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격한 영상을 자랑한다.(혹은 3D이기 때문에 더 자극적으로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가학적인 매력면에서는 근래 슬래셔 호러물 중에서는 단연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과거 80년대 기창조된 동명 호러물의 리메이크이다보니 과거 살인마시리즈 물에서 간혹 등장하곤 하던 설정이 곳곳에 눈에 띄인다.(원작 피의 발렌타인 역시 당시 유행하던 슬래셔 호러물들의 영향에서 크게 벗어난 혁신적 작품은 아니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어떠한 계기를 통해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살인마의 등장과 죽음(인지 아닌지 정확히 모르는 애매모호함)..
일정기간동안의 시간의 경과 후 다시 이어지는 악몽의 부활..
그러나 그 망령의 부활을 경고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한낮 기우 혹은 과대망상으로 치부받으며 무시당하지만 그 무시의 결과는 처참하다..
이처럼 호러영화에서 일반적으로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곤 하는 주인공들의 경고를 현실의 안일함 속에서 무시하곤 하는 일반 대중들의 결과가 참혹하게 그려지는 점에서 상당한 정치적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지 이번 블러드 발렌타인에서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엄연히 탄광의 대주주로서 한 마을의 경제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일종의 지배계층이라는 점이다.

 그가 10년만에 돌아와 탄광을 매각하려하지만 마을 경제의 원동력이자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탄광의 매각을 환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자신이 가장 믿고 싶은 옛사랑의 그녀마저도..
 그리고 시작되는 살인의 시작..그는 지속적으로 망령의 부활을 주장하고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간다.
결국 스스로 전모를 밝히려고 하지만 그가 마주치게 되는 현실은 결국 그 망령은 스스로가 만들어내 퍼트린 거짓에 불과하다는 사실 뿐..

 80년대 호러영화 속 정치적 메세지가 풍요로움 속에서 점차 희석되어가는 대중들의 비판의식 부재를 경고했다면 21세기에 리메이크 된 블러드 발렌타인은 자신들만의 권력과 이익을 위하여 있지도 않는 위험과 공포를 확산시키고 있는 현실 세계 속 지배계층들에 대한 냉소가 아닐까.
이것은 비단 대 이라크전에서 드러난 미국의 거짓뿐만 아니라 최근 국내에서 정부 여당 및 국정원이 적극적으로 확산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전쟁공포 및 반북,반공주의의 허상을 투영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2009/07/27 22:16 2009/07/2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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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좀 주소의 시작은 주인공 구창식 가족이 빚을 갚지 못해 공장을 채권추심업자들에게 넘기면서 시작된다.
이어 그는 자신의 채무를 담당했던 직원의 권유로 채권추심업자의 길을 걷게되는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구창식 채권추심업자가 주로 쫓아다니는 채무대상자들은 모두가 개개인의 사정상 빚이 생긴 서민계층들이다.
물론 구창식 자신 스스로도 노총각, 방음조차 안되는 단칸 고시원 생활에 타 금융권에 변제해야할
채무가 묶여있는 상태로 매일같이 추심업자의 독촉에 시달리는(?) 서민인 것은 매한가지이다.

결혼식 축의금마저 추심하러 온 구창식에게 향하는 조을상 가족들의 저주 섞인 눈초리..
추악스런 "인사"를 거부하는 곽선주에게 쏟아지는 접대사원의 욕지거리..
순진한 사회초년생 심수교가 서시히 스스로의 폭력성을 극대화시켜나가는 과정..

복잡하게 얽힌 인과관계의 근본원인을 제공한 기득권자들은 그저 이 아수라장에서 한 발 물러나있고
분노의 대상은 눈 앞의 대상에게로 집중돼 그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증오하며 싸우고 있는
영화 속 현실은 지금 우리네 현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왜 우리가 애꿎은 의경,전경들을 욕해야 하지? 물론 그 들 중 폭력진압을 즐기는 이가 없는 건 아니다만
그런 행위들도 윗선의 전폭적인 강제진압 명령과 분위기조성이 없는 이상 함부로 하진 못한다.)

정말 우리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며 상처를 보듬어야할 존재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이 그저 자신의 권리만
챙겨가고선 자신이 응당 갚아야 할 의무는 나몰라라 내팽게칠 뿐이다.(손병호 역)

그리고 이 모든 상처를 감싸안는 존재는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던 밑바닥 인생들끼리이고..
그에 대해 희망과 위로를 말하는 존재도 결국 메이저급 세계에서 한 발 물러나 있는 평범한 감독이 아닌가..

영화광고 카피 마냥 이 것이 희망의 메세지라기 보단 오히려 더 절망의 메세지에 가깝다고 보는 것은
내 성격 탓일까?
구창식이 한 번 멋지게 윗대가리들에게 호통을 치고 나와봤자 결국 그 바닥으로 돌아가 웃고 있는 모습은
혁명과 변화가 한 순간의 바람일 뿐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아 슬프다.

덧 :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감상이 다시 떠오르게 된 계기는 "드래그 미 투 헬"을 보고 나서였다.
      사실 집시 노파 가누시가 저주를 던질 대상은 크리스틴이 아닌 그 위의 은행지점장..혹은 그나마
      대출을 갚기위해 돈을 벌 수 있었던 곳에서 병환을 이유로 자신을 내친 무리들에게 가야
      응당 마땅하지 않았던가..
2009/06/17 11:29 2009/06/17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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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 2009/06/17 15:08  mod/del  write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싶으면서도 씁쓸함이 사라지지 않아 재미있게 되새기며 여러 사람에게 얘기할 수 없어 슬프네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알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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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스포일러있음)

왕의 귀환..

반지의 제왕 마지막 3부작 제목처럼 이 영화에 어울리는 수식은 없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그래!24 시사회에 당첨이 되었으나 사정상 못 가보고 정식 개봉 후 제돈내고 본 케이스이나 전혀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

구구절절하게 과거 이블데드시절의 샘레이미의 추억을 끄집어낼 필요도 없이 이것은 21세기의 최신 미장센을 탑재한 80년대 슬랩스틱 코믹호러의 완벽하고도 화려한 부활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가 없다.

영화 종료 후 드문드문 들려오는 장르 배신(?)에 따른 황당함과 불쾌함의 수근거림 따위는 살짝 맘속으로 웃어주고 돌아온 샘레이미를 느껴보자!

덧1 : 빅뱅이론의 하워드가 왜그렇게 걸파이트에 열광했는지 이해할만하다.


덧 2 : 아마 국회 폭행(?)건으로 전치 3주에 안대까지 부착하고 다니시는 전모의원과 싸운 노파가
      이분이셨나보다..

덧 3 : 지옥에 떨어진 김에 샷건 장착하고 한 번 지옥군대를 초토화시키는 후속작도 나쁘지 않다고 봄.
2009/06/16 11:43 2009/06/1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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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 2009/06/16 12:42  mod/del  write

    와아. 짝짝짝.
    정말 재미있어요!

  2. ssita 2009/06/16 12:59  mod/del  write

    와우, 빅뱅이론의 하워드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네요. 하워드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ㅎㅎ

    정말 굉장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말도 압권이었구요. 지옥으로 끌려갈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런 장소에서
    잡혀갈줄은 전혀 예상못했어요. ^^

  3. 레드몽키 2009/06/16 17:49  mod/del  write

    S// 사랑하오~

    ssita// 와우~~걸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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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신작 마더는 언뜻 전전작인 살인의 추억과 많이 닮아있다.

어느날 조용한 시골마을에 발생한 살인사건..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
번갯불에 콩볶아먹는 듯 빠르고 그러나 매우 부실하게 진행되는 수사과정..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현재 한국이라는 사회 속에 숨겨진 어두운 자화상을 가감없이 표현한 전작 "괴물"과도 매우 많이 닮아 한국 내 뿌리깊게 자리잡아 커오고 있는 "괴물"의 존재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 그려진 경찰의 모습은 과거 군사정권시절의 어두운 시대상 속에서 구시대 시스템과 신시스템 사이를 절묘하게 왔다갔다하면서 진실을 파헤치는(그러나 결국 실패하고 마는) 모습이었지만..

마더는 엄연한 21세기 현실 속에서도 구시대적인 시스템의 틀에 박혀 오히려 80년대 경찰보다도 더 무능하고 직업의식 조차도 희박해져 있는 상태로 보인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 수사관이 초등학생과 미드 CSI를 들먹이면서 비웃지만 일개 동네 양아치도 추론해내는 정도의 사건의 당위성이나 접근 방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골프공이나 핏자국하나에 메달리는 무능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현재 사회 전반에 걸친, 엘리트주의를 외치고 애써 성숙된 시민사회의식을 부정하고 비웃으며 민중을 "통치"하려드는 주요 정치,사회 기득권 세력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봉준호라는 이름 석자에서 미리 예측해 볼 수 있듯이 영화 "마더"는 기존 영화에서 그려지던 모성애 가득한 감동스토리는 아니다.
 모성애가 주요 근원이긴 하지만 영화의 주요 텍스트는 일방적인 모성애가 갈 수 있는 마지막은 어디인가를 묻는 동시에 나아가 일방적인 "믿음"의 끝은 어떤 식의 파국을 맞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생각해보라. 자식을 위해서라면 물불도 가리지 않는다는 그 고귀한 텍스트가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잔혹해 질 수 있는 지를..
 인간이 가지는 본성 중 가장 따뜻하게 느껴지는 최후의 보루인 모성애마저도 흔히 말하는 정의로움에서 벗어나는데는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삐뚤어지고 맹목적인 믿음은 삐뚤어진 결과를 낳고 결국 상처받는 것은 자신의 몫이 된다.
  이 영화를 통해서 한 번쯤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상황 속에서는 얼마나 나약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혹인 잔인해 지는 존재)인가를 한 번 쯤 생각해 봄직하다고 본다.
 그것이 오히려 "믿음"이라는 가치를 더 키울 수 있는 길이 아닐까..

 



2009/06/02 16:57 2009/06/0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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